
진중권, "삼일절, 친일절 되다", 2008.3.2. (프레시안)
얼마전 진중권 씨(이후 존칭 생략)의 글을 읽었다. 그의 글은 지나치게 통렬하고, 그 통렬함이 우리 사회에 지나치게 번연한 부조리를 가리킨단 점에서 그것은 정합적이다. 그의 ‘비호감 이빨’을 나는 그런 식으로 이해한 셈인데, 그래도 이번 글은 영 좀 별로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영 별로다. 왜 그럴까?
이재영, "[반론] 왜 우리는 반성하지 않는가?", 2008.3.4.
진중권, "이재영씨에게 답한다", 2008.3.4.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이 일본 우익의 수사임을 들어 ‘한국우익=일본우익=냉전논리=뉴라이트사관=기만적실용=정치포르노’로 달려가는 진중권의 글에, 독자 이재영 씨(존칭 생략)는 언제까지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일본의 사과 여부에만 맡겨둘 것이냐며 우리가 반성할 만한 건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이에 진중권은 ‘한가한’ 주장이며 “옳은 반성도 해야 할 맥락이란 게 따로 있는” 법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서로의 주장 중 일부만을 들어 비판하고 있기에 굵직한 쟁점만 더듬어 본다면, 여기서 나는 아무래도 이재영의 논점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물론 “옳은 말도 해야 할 맥락”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과거사가 민족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유승준 옹호할 때 너는 뭐했냐, 술 퍼먹었지?”란 진중권의 대목에는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비아냥거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행동하는’ 지식인에게 그 정도 너스레 부릴 권리는 좀 보장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 모든 ‘일리’와 ‘타당’과 ‘할 말 없음’과 ‘너스레’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확신에 찬 진중권보다 “올바른 어법은 수동적 귀결이 아니라 능동적 추론”이란 이재영의 말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린 사실, 가해자 ‘일본’이란 말에 떠밀려 우리 스스로 들여다볼 걸 너무 안 들여다보고 살았다.
나치와 일본, 나치와 조선
몇 년 전 ‘위안부’ 할머니들이 ‘양공주’였다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발언 때문에 세간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물론 그의 의도는 당시 여성의 몸으로 가정을 돕거나 한 몫 벌어보기 위한 자발적 지원과 그야말로 ‘징집’되어 끌려간 경우를 구별해야 한단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동의하기 힘든 이같은 수사의 원류에는, 그의 스승이자 지금은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이 된 안병직(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인장이 있다. 그리고 저 ‘양공주’ 발언 파문은 이들 뉴라이트 학자들을 두릅으로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 많이 도용된다.
헌데 이분과 공교롭게도 성함이 똑같으신, 서울대 서양사학과 안병직 교수가 몇 년 전, 이번엔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주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 보통 나치의 예를 들 때, 우리는 주로 과거를 반성한 독일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비교해 일본을 까는 논거로 나치를 자주 이용한다. 헌데 안병직 교수는 나치 하의 독일인 부역과, 일제 하의 친일 부역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일상사의 범주에서 (일본이 아닌)조선과 나치를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즉각 반발이 쏟아졌다. “일상사에 대한 논의가 일제 과거 청산작업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난 후 학계는 친일 부역 세력을 포함한 일제 시기 일상사 연구가 한층 활발해졌고, 이분과 동명이인이신 안병직 교수는 2006년 4월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엔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2002년) 그의 일상사 논쟁은 끝내 좌파의 우려대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만 것일까? 이른바 ‘현재적 맥락’을 등한시하고 앞뒤없이 나치와 조선을 비교하는 “한가한” 작업에 다름아니었던 것일까?
가해자와 피해자, 뉴라이트가 쥐고 있는 것
그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연구에 따라 억압과 수탈로 점철된 민족수난의 시대라는 일제시대의 역사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 민족해방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연구가 역사의 주체로서 일제시대 한국인의 능동적인 삶의 면모를 밝히는 데 나름대로 이바지하였으나, 그러한 연구성과가 갖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많았겠지만, 분명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일제시대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 비록 독립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 나치즘의 일상사는 나치시대 일상의 정상성에 만족하고 안주하였던 개개인에 대하여 나치정권의 죄상과 관련된 역사적 책임을 묻고 있으며, 그 점에서 나치즘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 가장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일제시대 한국인의 일상적 삶의 긍정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역사서술은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 한 마디로 말해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식민지 과거를 진정으로 청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_ 안병직, [과거청산과 역사서술-독일과 한국의 비교」,
<<역사학보>> 제177호 (2002), 230-236쪽.
일상사의 두각과 뉴라이트의 두각을 하나의 맥락으로 놓고 평가하는 것은 물론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 두 학풍의 '이미지'가 일견 비슷해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것이 마치 이름이 똑같되 엄연히 다른 두 명의 '안병직' 교수를 한 사람으로 보게 할 만큼, 또 그것이 숫제 어떤 의미의 '유비'처럼 다가올 만큼. 그런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아마도, 우리 역사를 더 이상 '피해자'의 그것으로, 따라서 '저항'이 자연스레 따라붙는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뉴라이트)안병직을 (위 인용문의)안병직을 통해 이해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분명 피해자다. 맞는 말이다. 고로 가해자는 가해자끼리 비교되어야 한다. 나치랑 일본이지, 나치랑 조선이라니. 플로우가 안 맞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홀로코스트의 유태인이랑 731부대의 조선인은 묘하게 맞물린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 그들을 향한 분노에 어찌 망설임이 있을 수 있으랴. 일제 시기 수없이 고문당하고 찢겨진 독립운동가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을 어찌 눈물없이 대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 맞다, 그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가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 나치 독일 하에 침묵하고 방조했던 독일인은 역사의 가해자다. 혹은, 그런 가해자가 독일인의 대다수를 차지했는지 모른다. 독일에서는 이미 나치 당대에 살아남은 ‘아버지’ 역사가들의 부역 혐의나 나치 치하 평범한 독일인의 협조 등을 주제로 열띤 논의가 벌렸고, 또 진행중에 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과연 과거 일제 시기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만 존재했을까? 그들이 우리 과거의 전부였을까? 일제에 협조한 사람은 없었을까? 있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혹 집안이나 출세를 위해 문명국인 일제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나라는 전자의 정통성을 내세운 ‘후자’의 사람들에 의해 통치돼온 나라다. 독립유공자 자손과 친일파 자손 사이의 ‘실질’적인 지위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실무적 근간을 세운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전자가 아니라 후자들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표방한 채 가해자의 내용을 키워온 나라다. 내용을 오래 싸안을 수 없는 기표는 찢어지게 돼있다. 그 찢어진 자리에 뉴라이트 역사관이 등장했고, 그들은 이제 스스로를 ‘가해자’라 커밍아웃하기 시작했다.
가해자가 뭐가 나쁜가. 친일이 뭐가 어때서. 그것도 다 근대의 혜택의 일종이라고. 먹고 살라쳐봐 어쩔 거야. 일본 기술 없었으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먹고 살았을 것 같애? 그 때 기술이 그렇게 이어져서 경제개발까지 온 거라고. 뭐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때나 지금이나 친일파 줄 안 잡고 출세하기 힘든 거, 한나라당 줄 안 건들고 출세하기 힘든 거, 매한가지 아냐? 늬들 취직할 땐 안 그래? 대학교서 배운 ‘저항’이 얼마나 갈 것 같애? 차피 취업 때 대세따라가는 거, 늬들은 못 느끼니? 늬들은 안먹고 살거야? 그냥 인정해 늬들도.
위의 말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이미 주어진 제약도 현실의 일부이지만,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방향도 현실의 일부다. 위의 언설은 전자의 '현실'엔 충실하되, 후자의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저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현실'의 방향을 가리켜 우리는 '당위'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위'만 내처 외쳐지는 것 또한 전자의 의미에서 '현실'을 외면하는 셈이다. '현실'적 당위는 '현실'의 재료에 의해 뒷받침되어야만 존립할 수 있다. 이 점은 역사나 역사관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역사관이든, 사관은 스스로의 신조에 맞는 역사의 ‘재료’를 취한다. 뉴라이트의 경우 그 대상은 '가해자'의 그것이다. 방향이 어찌됐든, 실질적으로 통치해온 사람들의 사람들의 생이 드디어 설명받을 길이 열렸다. 우파들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그 설명방식에 동의할 수 없음을 묻기 이전에, 이전의 저항 사관에서는 그럼 그들의 인생이 역사의 '재료'로서 과연 얼마나 설명'되어 왔는가'를 지적코자 한다.
물론, 저항의 역사는 정당하다. 그 정당성엔 그것을 가능케 한 피눈물이 배어있다. 하지만 역사는 정당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역사에 의해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은 그 정당성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기존의 저항 사관은 운동사에 치중한 나머지, 운동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상대적으로 무심했고, 그러던 차에 그 공백을 뉴라이트 사관이 (그들의 탐탁찮은 역사인식을 간판으로)점유해버리고 만 셈이다.
고로 뉴라이트 사관을 대할 때는 다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의견이 얼토당토 않기에 그를 무시해버리면, 그들이 (밉든 곱든)새로 설명하고 있는 역사의 몫까지 폐기처분하는 셈이 된다. 이런 것이 이를테면 역사학의 내공이고, 때문에 보기보다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뉴라이트 까기가 된다. 하여 우리에겐 새로이 설명받은 역사의 대상들을 거머쥐면서, 뉴라이트가 천명하는 도의를 효과적으로 반박해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전자와 후자를 아우르는, 저항의 정당성을 바로세우는 동시에 ‘가해자의 기억’을 인정하고 그것까지 안에 품어 설명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더불어 그 결과는 뉴라이트처럼 ‘우리 중에도 가해자가 있었다’, 혹은 ‘우리는 가해자였다. 참 즐거웠다’ 식의 그림일기식 결론을 벗어나야 함이 분명하다. 우리 안의 ‘가해’의 기억을 ‘주체적’으로 설명해내는 임무를 그들에게 내처 맡겨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체'의 반성, '객체'의 긍지
[근대의 초극]이라는 말이 있었다. 일본에서 나온 개념으로, 태평양 전쟁을 전후해 같은 이름으로 대담과 토론회가 꾸려진 바 있다. 핵심 주제는 서구식 근대를 넘어서자는 취지였는데, 그 넘어선 '취지'에 자리한 것은 다름아닌 '천황의 만세일계', '대동아공영권' 등속이었고, 말할 것도 없이 그 실상은 일본 국민을 전쟁에 동원키 위한 ‘파시즘', '총력전 사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난 후에 곧바로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이 [근대의 초극]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학계의 연구가 속속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위험하고도 수치스런 기억을 자국민 스스로 정리에 나선 셈이다. ‘가해’의 기억을 들추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앞서 장황하게 말했듯 그 기억을 먼저 꺼내 설명해내지 못하면 역사 기술에 맹점이 생기고, 더러는 다른 이상한 의도를 가진 이들에게 전유되기도 쉽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부역자collaborator나 친일문학에 관한 연구는 1990년 말엽에야 본격적으로 착수됐다. 이런 점을 비교했을 때, 전쟁을 저지르고 폐허가 된 나라가 20년도 안돼 그 전쟁의 축이 되었던 전쟁 이데올로기를 반추할 수 있는 것, 근대 일본 지성의 힘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아래에 소개된 인용문은 바로 그 '힘'의 속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초극“ 전설만으로 사상을 잘라내어 버리는 것은 거기에서 제기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을 문제까지도 잘라내는 것이 되므로, 전통을 형성하는데 유익하지 않다. 되도록 가능성의 범위 안으로 유산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상의 문제를 다루는 바른 방법일 것이다. (89쪽)
- 다케우치 요시미, [근대의 초극],『일본과 아시아』(소명출판,2005) 中
‘근대의 초극’ 담론을 다시 들추려는 건, 그 아래 묻힌 전쟁 이데올로기의 가능성을 일소하면서, 거기에 혹 두릅으로 엮였을, 어떤 “에네르기”의 원료로 쓰였을 전통을 복권시키려는 의도일 게다. 주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다는 건 바로 이런 점을 의미한다. 전쟁을 반대하되 전쟁을 보다 ‘섬세히’ 반대하는 것, 전쟁의 이름으로 전쟁이 아니었어도 될 점까지 파묻지 않는 것. 무려 전범국이었던 일본도 가능했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이를테면 친일의 경우, 사실상 한국의 근간을 규정지었던 ‘친일’이 총체적으로 버림받거나, 아예 총체적으로 복위되는 일 없이, 그 아래 묻힐 기회주의, 파시즘의 가능성을 일소하면서, 거기에 혹 두릅으로 엮였을 "전통"을 복권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이처럼 자국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한해 벌어지는 이 극명한 대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내 나름의 분석은 이러하다. 일본은 어쨌든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자였다. 그들이 도망갈 사상적 공간은 지극히 협소했다. 그들은 서구 근대를 수용했고, 서구 근대를 초극하려 전쟁을 일으켰으며, 전쟁 후 그들은 서구 근대와 서구 근대를 초극하려는 노력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그들은 “근대”와 “근대의 초극”과 그에 도용된 수많은 전통들과 그들이 표방하는 “세계사적 필연”과 “대동아의 건설”과, 그것들이 모두 부서진 잔해 속에서 그들이 기댈 사상의 편린을 찾아야 했다. 이렇듯 전쟁이 막 끝난 차에 전쟁 이데올로기를 다시 검토하는 것은 필시 쥐약 사이에 있는 환약을 주워 삼키는 것과 비슷한 분별을 요했을 것이다. 해서 위 인용문에서 엿보이는 일본 사상계에 대한 스케치는 자못 치명적이고, 위태위태하며, 또 그만큼 절실하게 와닿는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처음부터 피해자였다. 그것은 사실이다. 또한 사실임과 무관하게, ‘피해자’였다는 자기 인식은 어떤 알리바이로 사용되기 쉽다. 피해자는 그들의 모든 책임과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가해자에게로 돌리는 특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를 ‘알리바이’하고 한 까닭은, 연민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신분이 영원히 같은 효력을 가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 한 지식인의 위와 같은 성찰이 있을 지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과거의 ‘피해자’ 전력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세계체제의 ‘가해자’로 거듭날 ‘국력’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국력’이 생긴다고 ‘피해자’ 청구권이 박탈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에 몰두하는 새 우리는 다만 너무 많은 것들을 ‘피해자’란 핑계로 사보타주해오고 있는 건 아닐까.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 유시민, [항소이유서] 中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 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中
진중권이 이재영의 주장을 ‘한가하다’고 평한 데는 일리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한가하다.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의 번민이 ‘피해자’의 고통보다 무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가해자’의 고통도 고통이다. 피해자의 그것보다 가벼움을 인정하더라도, 가볍기에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진중권의 말대로 “다른 일로 바쁜” 편이 좋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세상엔 한가한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모두 인민재판에 회부할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들이 혹여 가질 수도 있을 ‘피해자’들에 대한 건강할 의식까지 함께 버려지고 말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이 이 땅의 피해자들에게 혹여 누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들을 보고 눈물 한번 흘려보지 않은 자들이 무얼 알겠느냐는 ‘폭력'적인 언사에 나는 공감하고, 또 동의한다. 스무살 때 본 5.18 희생자 사진은 내게 그 어떤 서적보다 ‘피해자’의 실체를 자세히 가르쳐주었고, 그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자를 나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유시민의 저 말은 내게 그런 맥락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분노는 나의 눈을 바루었지만, 분노는 바룬 나의 눈을 다시 잡아먹었다. 상황에 대한 도덕적 분노는 세상에 대한 눈을 틔워주었지만, 그 도덕적 분노만으로 바뀌는 세상의 범위엔 한계가 있었다. 브레히트의 말대로,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만들었다. 쉰 목소리에 사람들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불충분한 내용으로 외치는 구호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에 저쪽 편은 이제까지의 모든 양적, 물적 성과에 차압딱지를 발부할 참이고, 이에 우리는 우리가 분노했던 바를 잃지 않기 위해 싸울 때가 왔다. 우리는 여전히 분노하되, 좀더 첨예히 분노할 필요가 있다. 분노에 의해 바로잡힌 우리의 눈이 다시 분노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도록, 분노하지 않은 것이 너무 큰 허물이 되지 않고, 분노하는 것이 더 이상은 트집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에 앞서 세대의 화해를 실현했던 저 독일인의 외침을 우리도 한번 가져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 에드가 볼프룸,『무기가 된 역사』(역사비평사, 2007), 247쪽.
부기) 이 글은 2008년 3월 17일에 써서, 한 서평 팀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개인블로그 포스팅의 목적에 맞게 다시 다듬은 것이다. 인용자료나 뉴라이트에 대한 논조에서 시의성이 얼마간 떨어지는 것은 그 때문으로, 양해를 구한다. 진중권의 글이 장기적으로는 내가 지적한 문제를 담지하되, 단기적으로는 전술적으로 정합적인 발언이었다는 것은 이후의 정세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 셈이다. 또한 글을 쓰던 당시는 '정치세력화'된 뉴라이트의 움직임이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때였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그에 따른 여론이 이미 형성된 지금에 와서 '뉴라이트'에 대한 입장과 평가가 이 글과 달라져야 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정치세력화'된 뉴라이트를 제외하고 '학술'적 측면에서의 뉴라이트에 국한한다면 - 이런 조악한 분리가 감히 허락된다면 -, 위 글의 논지는 여전히 울림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부기 2) 우웅님의 지적으로, 서울대 서양사학과 안병직 교수와 서울대 경제학과(뉴라이트) 안병직 교수가 서로 다른 분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지적해주신 우웅님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또 사죄드립니다. 또한 본문도 그에 맞게 일부를 새로 고쳐 썼습니다. 널리 양해 부탁드리며, 사실관계에 치명적인 오점이 있었던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지적해주시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알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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