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정 by cryingkid

매일 면속곳이나 입는 이에게 잠자리 날개같이 입고 다니는 아낙은 유난스러워뵐 수 있다. 저것들 그냥 다 사치지. 찢어지게 가난해서 사료도 끓여먹어본 이에게 공교로운 양념 맛이나 음식투정은 우스워뵐 수 있다. 배가 부르니 저런 호강들이지. 저네가 수족처럼 걸치고 있는 저것, 저것들 홀랑 벗겨놓으면 저네들 흡혈귀가 해든 듯 방정을 떨겠지만, 나는 본래 없은 몸이니 차라리 의연하지. 저것들 없이 못살 것처럼 구는 년놈들, 없이 살아도 다 살아진단 거 저네들은 모를 걸. 뭘 없어보고 쪼들려봤어야 알지 알기를.

삶의 밑바닥에 메쳐졌다 일어난 일을 애써 긍정해보는 말이 그런 식이다. 그들은 깨끼저고리를 깔끔하니 입을 버릇을 모르고, 재료를 적당히 넣어 양념을 적당히 쓰는 구경을 못해봤다. 구경은 했겠지만, 그것들을 '진심으로' 배워볼 수가 없었다. 배우려다가도 못 살던 시절 맺힌 것들 생각하면 모두가 잔망스러워 다 집어치우고 싶었다. 저저 인생 들머리도 못살아본 것들 배냇짓거릴 내가 왜. 그 배냇짓으로 소용되는 물품이 공교로우면 공교로울수록 더 내치고 싶었다. 그래서, 없어본 이들은 어딜 가든 꼭 티가 났다. 없는 것에 힘겨이 의미를 부여해온 나머지, 있는 것들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줄을 몰랐다. 그들에게 그것은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기에, 없어본 이들은 있는 걸 당연히 여기는 이들에게 늘 주눅이 들었고, 또 그럴수록 있는 것들의 잔망스러움을 들어 거드름을 피웠다.

그 거드름 끝에는 항시 한 가지 방도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내 자식에게만큼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있는 걸 당연히 여기지 못하면 못 살던 습성은 대를 이어 물려지겠지, 그건 안될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20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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