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2008) by cryingkid



이 감독은 신경이 참 질긴 사람이다.
엔간해서는 뒤도 돌아보기 싫은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 한편을 떡 꾸려냈는데,
자기가 건진 캐릭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덜 떨어졌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도록 이끌어준다. 그 점이 대단하다.

상황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천천히 도태되어가는 게 이른바
사회생활에 적응한다는 말의 실체쯤 되겠지만,
생각해보면 어릴 때건 컸을 때건 저랬던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겠기에
미친듯이 웃고 나온 다음 두 시간 후의 입맛이란 게 이게 참 씁쓸하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도 정신없이 재밌게 만든 감독이 좀 대단해뵌다.

이 영화는 心적 소수자에 관한 얘기다.
영화가 말하듯, 자기 감정을 사회화해버릇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라는 건
복잡해뵈도 실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딱히 옹호하고픈 생각은 없다.
과거의 내가 그랬건 어쨌건, 또 저런 사람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걸 보면 난 참 못됐다.
영화를 보고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했다.
제 속이 병신인지도 모르고 세상 만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살 거라
호언장담하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병신이 싫다. 난 '병신'이란 개념 없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병신과 "소수자" 사이는 과연 얼만큼 멀까.
내가 그은 기준에 난 정말 자신이 있는가.



근데 이런 거 다 필요없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봐도 웃기다.
배우의 웃음과 울음을 상황을 위한 보조장치로만 쓰는
박찬욱식의 특장이 몇 군데 삐걱거렸던 것 말곤 다 유쾌했다.
영화관에서 이렇게 채신머리없이 웃어본 적도 오랜만이다.
그렇게 웃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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