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촛불을 밝혀요 by cryingkid

행복의 아침이에요
창을 두드려
가난한 마음 하나로
촛불을 밝혀요

모여서 가는 어두운 길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아
자비를 구하는 초라한 집에
촛불을 밝혀요


모두의 얼굴마다
따스한 불빛이
제 몸을 사르며 빛나는
촛불을 밝혀요

모여서 가는 어두운 길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아
자비를 구하는 초라한 집에
촛불을 밝혀요


어느새 하루 저물어
어둠이 밀려오면
외로운 나그네 손잡아
촛불을 밝혀요

모여서 가는 어두운 길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아
자비를 구하는 초라한 집에
촛불을 밝혀요 - '98.11










시위판에서 부르는 노래가 다시 아침이슬로 돌아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쏟아진, 언감생심 '민중'을 자처하던 노래들이 사람들의 농담거리로 채이고 닳은 자리에 하나 남은 것이 그 노래였다. 2008년 촛불시위때는 '바위처럼'도, '새물'도 들리지 않았다. 2000년을 전후하던 그 시절, 운동권 스스로 사람들의 빈축을 사던 투쟁스러운 분위기를 어떻게든 가려보고자 온갖 방향으로 신나고 샤방하고 발랄하고 즐거운 민중가요들을 쏟아냈지만, 2009년이 된 지금 그 노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는 그들만의 카르텔을 "애써" 즐겁도록 과시해야만 할 안쓰러운 상황일 때 뿐이다.

운동권이 실패한 것은 늘상 그들 스스로의 잘못도 있긴 하겠거니와, 거기에는 꼭 운동권을 앉은 자리에서 변태로 만드는 세상의 "미친 짓" 또한 한몫 개입한다.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 여섯이 타죽었다.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나라에서 좌파들이 제정신이길 바라는 건 정말로 무리일지도 모른다. 세상 걱정한다는 노래가 애써 즐거워야 하는 까닭 또한, 세상의 미친 짓에 빗대어서는 마찬가지로 무리일지 모른다. 미친 짓에 발랄함으로 '화답'하길 바라던 시대는 그것으로 이미 징후적이어서 끝내는 그 발악같은 즐거움 아래 싸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예술에서'조차' 외면당한 정치의 새된 그림자를 담으려는 묵직한 노래들에서 가끔 내가 받는 위안은 그런 것들이다. 거기에는 객관적으로 "미친 짓"에 대한 설익은 분노와 함께, 그 분노로 인해 남몰래 상처받은 마음이 쓰다듬기는 위안이 함께 깃들어있다. 너무나 가혹하고 번연한 것들에 대해, 경건과 묵상으로 화답하는 옛 무거운 가요들을 촌스러움으로 떨쳐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0년대 유신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더러 휘장 안으로 숨겨 주었던 가톨릭 교회의 가라앉은 중창 소리에,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떠나 전국을 떠돌면서 80년대 대학판에서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던 노래들을 작곡했던 포크계의 대부 김의철씨의 단정한 기타, 또 시대의 애환과 그에 따른 슬픈 과대해석으로 노래 스스로의 의미를 거뜬히 넘어버리던 김민기의 노래를 가장 적확한 목소리로 소화하던 양희은의 가창에 21세기의 내가 굳이 감동을 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용산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날 지천으로 내린 눈길을 걸으며 들려오던 이 가슴 내리누르도록 청아한 노래들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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