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과 "정치" 사이 : 저항정치의 진전 by cryingkid


박원순이, 곽노현이, 김어준이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정치에서 '옳음'은 당연히 극히 일부분의 요소에 불과하다.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정치의 기반이었는지는 노무현의 부엉이바위를 상기해봐도 분명하다. 그들은 이제 더 옳으려고 애먼 힘을 빼지 않는다.

민주세력이 이제 비로소 기득권세력의 정치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는 열린우리당 실험때 완성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만 옳았어야 했고, 옳음 이외의 정치력으로 그들의 이상을 기득권으로 정착시켰어야 했다.

정당이 일견 '옳아'보이는 것은 때로 그만큼 그네들의 정치 기반이 그 '옳음' 외에 극히 빈약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자신이 '옳은' 것에 지나치게 공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스스로 '옳음' 외의 세상에 무지하거나 혹은 알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다. 옳음을 추구하기 위해선 당연히 옳음이 아닌 것들, 옳음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다. 지난 세기 우리네 저항정치는 그걸 깨우치지 못한 필연적 실패의 소산들로 가득했다. 이제는 그런 순환에서 정치판이 한 발 벗어나려나 싶다.

옳음이 진보하지 않아도 역사는 진보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비평은 기존의 '옳음'의 기준과 더불어 저네들이 습득하고 있는 정치공학 그 자체에 대한 인식과 인정, 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비평으로 시야를 확대해야 할것이다. 딱 이 단계가 19세기 유럽에서 맑스가 도달했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진보해도 옳음은 진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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