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새로운 생명에 대한 윤리는 다른 한편으로 그 생명의 인격이 파괴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출산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출산은 새로운 생명의 존재적 요청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상황에서의 출산은 엄연한 타자로서의 아이가 자신의 존재적 요청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타자성을 부인하는 부모들의 자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부모는 그 경우 새롭게 출산될 아이를 타자적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타자성을 존중할 수 없어서 출산이 금지되어야 할 상황들이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두 부모가 모두 과도한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나 자영업 노동으로 혹사당해서 새로운 생명의 존재적 요청들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는 상황.
2) 가족, 학교와 같은 사회화 기구들이 새로운 생명의 존재적 요청들과 인격적 자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외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여 그 내면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상황.
3) 성장한 후 의미 없는 노역으로 평생의 삶을 소진하여야 할 상황.
4) 타자와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야수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등등.
이러한 상황들에서 생명의 출산은 생명의 내적 파괴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도출시킬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들을 폐기하지 않는 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상호주체적 윤리, 즉 새로운 생명의 주체성과 기존 사회성원들의 주체성 사이의 상호존중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내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조건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이종영, "성과 사랑의 윤리", <정치와 반정치>, 새물결, 2005 中
새로운 생명의 타자성을 존중할 수 없어서 출산이 금지되어야 할 상황들이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두 부모가 모두 과도한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나 자영업 노동으로 혹사당해서 새로운 생명의 존재적 요청들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는 상황.
2) 가족, 학교와 같은 사회화 기구들이 새로운 생명의 존재적 요청들과 인격적 자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외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여 그 내면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상황.
3) 성장한 후 의미 없는 노역으로 평생의 삶을 소진하여야 할 상황.
4) 타자와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야수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등등.
이러한 상황들에서 생명의 출산은 생명의 내적 파괴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도출시킬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들을 폐기하지 않는 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상호주체적 윤리, 즉 새로운 생명의 주체성과 기존 사회성원들의 주체성 사이의 상호존중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내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조건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이종영, "성과 사랑의 윤리", <정치와 반정치>, 새물결, 2005 中
1. 출산과 육아는 그 상황에 '던져지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부분이 많다손치더라도, 세상엔 행복하지 않은 부모들이 너무 많다. 행복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는 색다른 방식으로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태어난다. 보통 그런 환경결정적인 불행들은 운명이겠거니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마련이지만, 그런 운명의 피험체를 그리 행복하지도 않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경우가 다르다. 짐승의 본능이나 민중의 생명력이나 국위선양의 방편이나 번성의 종교적 섭리 따위로 확신범적 비출산을 계도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당연히 '비인간적'이다.
2.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인생보다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아이를 낳는다. 아이에게 태어나고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는 보통 고민하지 않고, 실제로 알 수도 없다. 다만 아이를 기르면서 부모들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고, 어지간한 충격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힘든 장년으로서는 자식만한 자기 계발의 기제가 없다. 내지는 이 생이 고통스러워 자식 안아 기르는 낙이라도 갖고 싶었던 이들은, 나 혼자 이 억겁을 견디기엔 배가 아파서 내 배로 낳은 자식과 그 짐을 좀 나눠지고 싶었을 수도 있다.
3.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조직하기 시작한 이들은 보통 결혼을 않고 사는 사람을 진심으로 자신들과 '같은 인간'의 범주로 놓고 사고하기 어려워한다. 갓 낳은 자기 자식 사진을 담벼락에 올려놓고 자랑하는 순간, 온누리는 그네들의 축복어린 출생에 마땅히 들러리서야 할 존재로 여겨지고, 그런 배타적 행복 속에 비혼자의 존재는 그네들의 머릿속에 거의 완전히 삭제돼있을 것이며, 이후로도 그럴 공산이 높다. 실제로 사람의 실존은 그다지 넓은 지반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점차 그 좁음을 '자랑'삼게 될 것이다.
4.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자기 삶이 독존을 넘어 어떤 형태로 재생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한 삶과 인생은 생각보다 아주 쉽게 생기가 말라붙는다. 보통 그런 이들은 아이와 함께 행복해하는 주위 사람들을 평소에 지나치게 미워하거나, 가끔씩 지나치게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위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자신의 삶의 조건을 남들보다 열 배는 치열하게 쌓아올릴 필요가 있다. 그게 제 결심의 책임이라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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