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의 도의 by cryingkid

1. 전향

전 사실 '개념'이란 걸 - '진리'나 '본질' 따위의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사는데 써먹을 수가 없어서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전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본질'인지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전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식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 ‘진리’를 ‘진리’라 입 밖으로 꺼내는 걸 여간하면 피하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전 수학을 참 잘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무한정 투여된 학원교육의 산물이고, 문제풀이 능력을 수학이라 부르기 민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그랬습니다. 그런 제가 수능 70일 남겨두고 홀라당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한 것은, 그 좋아하던 수학이 몹시 한정된 테두리에서만, 그러니까 수학의 매트릭스에서만 유효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가감승제에서 극한 미적분으로 달려나가는 그 치밀하고 아름다운 연역체계 역시, ‘수학’이라는 틀 안에서나 그렇게 태연히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물론 현대 문명의 모든 기초가 그 숫자놀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겉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수학의 수식들이 실제 자연현상 속에선 얼마나 미분된, 안 당연한 형태로 나타나던가.

고3때 물리 II를 공부했던 저는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구상 모든 피조물들의 움직임을 벡터로 표기하는 상상. 길게 나는 새의 꼬리에도, 살랑이는 버드나무 이파리에도 각각 화살표와 방위각이 그려져 있는 상상. 분명 그 벡터들에 부여된 수식들은 그것들의 움직임을 설명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새와 버드나무가 그 법칙들을 다 꿰어서 날고 흔들리는 건 아니겠지요. 다시 말해 법칙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라리 물방울 하나 + 물방울 하나 = 물방울 하나(1+1=1) 같은, 수학의 기반을 놀리는 일이 더 재밌더군요. 물론 개체수가 아니라 부피를 기준으로 하면 수식은 맞아떨어지겠지만, 그 말은 동시에 모든 수식 뒤엔 모종의 ‘전제’가 따라붙는다는 말도 되죠. 내가 알던 모든 정연한 수식 뒤에 그보다 훨씬 복잡한 전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안 뒤부터, 저는 수학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정해진 문제 풀 때나 재밌을 뿐, 세상을 설명하는 틀로 삼기에 수학은 너무 번거로워 보였거든요. 물론 그에 취미가 있는 사람도 있겠고 또 그런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제 몫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세상 속에 숨은 수식을 알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걸 모든 사람이 꿰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2. 교문 밖에서 개념을 외치다

하지만 학문은 대부분 법칙 싸움이죠.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고, 법칙성 그렇게 싫어한다는 그놈의 사학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학문이건 현실을 설명할 모델을 만들고 그에 각 학문 특유의 논리체계와 개념정의가 부여된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논리와 개념이 얼마나 정묘한가, 또 그렇게 구축한 모델이 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 이 둘을 들 수 있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후자를 도외시한 전자의 논의에 관대하지 않고, 나아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통해서건 경험을 통해서건, 자기가 얻은 지식으로 세상을 연역해내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죠. 저도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해봐서 압니다. 그리고 그 연역해낸 모델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반례들은 쉽게 그 모델의 강고함에 부딪쳐 내쳐지기도 합니다. 사실 그 모델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겠습니까. 학자가 공짜밥 먹는 게 아니듯, 그거 하나 만들려고 무던히도 읽고 고민도 했겠죠. 하지만, 아무리 학자가 자기 공력을 쏟아부었든, 그 모델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그걸로 땡입니다.

교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근원적 진리나 논리 같은 것 없이도 잘 삽니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학자는 그 사람 모두를 담보할 책임을 지닙니다. ‘진리’는 학자 개인의 것이 아니니까요. ‘본질’ 또한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죠. 개념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학자의 말 한마디가 세상 사람의 삶을 이리저리 규정합니다. 거기에 학자의 권능이 있고, 거기에 학자의 패착이 있습니다. 자신이 다루는 개념 속에 수억의 사람들이 묻어있다는 것, 그것을 잊는 순간, 개념은 사람을 해치고 학문은 교문 밖을 넘지 못합니다.

물론 자기가 구축한 개념과 세상 사이의 간극은 늘상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간극이 벌어졌을 때 학자가 할 일은, 제가 공들인 개념과 논리의 정합성을 재차 과시하는 것보다, 자기 틀에 끼워지지 않는 세상의 것들을 찬찬히 살피는 일일 겁니다. 설명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의 ‘진리’는 보편타당하지 않은 것이 되겠기에, 간극의 경험은 그 ‘진리’의 허점을 채우는데 필요할 소중한 반례입니다. 그것은 학자로서 ‘공부’의 대상이지, 배척과 폄하의 대상이 아닙니다. 

학자가 이야기하는 논리적 전개와 정합성에 대해 사람들이 낱낱이 다 알아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새가 나는 궤적의 수식을 알 필요가 없고, 세상의 진리를 사람들이 다 알고 살 의무가 없는 것처럼요. 학자 스스로 어떤 논리에 기초하든, 그 결과가 읽는 사람의 가치관에 배치될 경우 그것은 당연히 타박의 대상이 됩니다. 학자가 말하는 '개념'과 '본질'은 학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학자 스스로 그들의 '원론'이나 '정합성'을 날것 그대로 내세우는 것은 그래서 ‘무의미’합니다. 그 원론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첫 울음 뗀 갓난아이의 폐 속으로 삽시간에 들어가는 균처럼, 그것은 세상의 수단과 수완과 환경의 맥락 속에 미분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원론'과 '정합성'이 사람들에게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는 학자의 ‘원론’이 세상 속에서 숨쉬기 위해 반드시 고려돼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불거질 불협화음이 학자의 어떤 내적 정합성에 의한 것인지 사람들이 알아줄 의무는 없습니다. 그것은 학자 스스로의 몫이지, 그걸 읽는 사람들의 몫은 아닙니다.


3. 學의 도의

모든 사람이 제가끔 제 '개념'을 살지만, 그 개념을 설명할 논리를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중 그것을 아는 사람이 학자이기 쉬워, 그들 중 한 켠은 이따금 세상을 쥔 기분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논리를 쥔 그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본질’을 누구에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현실에 제대로 먹히지 않는 이상, 그들의 논리를 감지덕지 배워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안 먹히는 사례가 나왔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고 제 논리만 내세울 권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혹 일반인들이 학의 개념을 갖춰 학자들의 입에 맞는 말을 귀에 넣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아량이 하해로워서이지, 학자의 개념이 절륜하여 그것을 '당연히' 배워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반복하자면, 아무도 그에게 자기가 향유하는 삶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한 적 없기에 학자는 항상 긁어부스럼의 위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고, 또 그렇기에 자신의 '학'이 대변할 사람들의 삶을 받들듯 모셔야 할 사람이 바로 '학자'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논리에 따라서 도출되는 결론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의 논리라면, 그 논리에 따라서 도출되는 결론에 대해 긍정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이는 제 전공인 '사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이겠지요. 누구도 저에게 제 삶의 역사를 톺아 달라 부탁한 적이 없기에 저는 더 조심스럽습니다. 더불어 '5.18은 공산당의 책동이다'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건 그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내 언어의 부족함을 탓할 일이지 그가 이러저러한 역사적 개념들을 몰라서 그렇다고 결론내리기를 피하는 편입니다. 그 사람의 무지는 제 학문의 '자원'이지, 제 학문의 '놀림감'은 아니니까요. 

저도 학자들의 개념유희에 유효한 말을 하고프기에 여러 학을 두루 공부해보고 싶고, 여러 저작들을 찬탄하면서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그런 학을 알지 못한 채 제 몫의 통찰로 어떤 사안에 대해 주절거리는 것 또한 즐깁니다. 저는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원적 진리, 논리 같은 거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 앞에 학자는 항상 후방입니다. 이 점을 잊으면 제아무리 포부를 펼친들 그 학자의 말은 학자의 밖을 넘지 못하고, 학문은 결코 학문 밖을 넘지 못합니다.
           
                                             - 20070821, crying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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