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연가 by cryingkid

어제는 연고전이었다.

오래되고 싸구려인 술집에는 빼곡히 사학과 사람들이 차 있었다. 연대는 05 아래가 한명에 01,00들이 큰소리로 술먹이고, 술먹히고, 분위길 띄우고 있었다. 고대 쪽은 복학한 02학번들이 흥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구석에 앉아 노인네처럼 다리를 꼬고 나는 앉았다.

내가 직무유기해온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니, 직무가 아니다. 사람 앞에서 알랑거리기 싫으면 그저 관두면 그만이다.눈앞의 고대 과대는 웃음이 청명하다. 감정노동 반에 반은 즐기는 모양새가 훤히 보인다. 윗니를 드러내며 화통하게 술을 붓는다. 나도 언젠가는 저리 사람 사이를 웃었던 적이 있다. 천천히 술잔을 기울여 잇 사이로 소주를 넘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보취급 당하는 세상이라고, 사람 사이에서 감정노동하는 게 꼭 제 더딘 내공을 입막음하려는 수작 같다고, 누구나 영악해지는 가운데 사람 챙기는 조직일꾼이 이제는 씨가 마른다고, 이젠 나도 하기 싫다고, 그렇게 다리 꼬고 앉은 내 눈에 흥건히 술 밴 붉은 윗도리들은 아름다워 보였고, 그 아름다움은 바늘이 되어 나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

 

과에 학회가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점점 파편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하나‘씩이나’ 남은 학회조차 굴릴 사람이 없는 학내 구석을 나는 감추고만 싶었다. 그들의 너스레는 박노자가 지적한 대로 집단주의적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전적이었다. 무엇이든 다 깨지고 남은 게 없는 학내 현실에서 나는 그 고전미가 부러웠다. 학회를 다섯 개나 돌릴 수 있다면 사발식 같은 건 몇 번이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문화에 ‘개인’이 없다는 건 누차 지적돼온 바다. 이를테면 공중도덕의 경우 ‘민족의 긍지’로 때우기만 했지 ‘개개인이 지켜야할 도리’로 새겨지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주장, 맞는 얘기다. 우리나라 ‘국민’은 개인의 주체성을 집단에게 증여하고, ‘집단 단위’의 정체성에 감정이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긍지를 쌓았다. 그것이 우리가 ‘근대’를 꾸려온 방식이다. 그것은 반쪽이었고, 유효했다. 고대의 사발식처럼.

반쪽이었다는 이유로 유효한 것을 내버린 황량한 학내 현실 앞에 나는 끈적끈적하던 것들이 자꾸 부러웠다. 그 때는 차라리 파리라도 꼬였고, 무언가 건재하다는 느낌이라도 있었다. 그 끈적함 속에는 사람들 사이를 면장하면서 제 허한 뱃속을 때우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수업 말고도 달리 쌓을 수 있는 지식을 통해 숨은 한 방을 품고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완충지대를 담당하던 학회가 사라지고 난 뒤, 사람들은 전반적이고 체계적으로 무식해졌다.

 

더 이상 감정노동하기 싫은 지우들이 이따금 전화기 앞에서 터질 울음을 예비해두고 굳은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이별하는 요즘, 파리도 하루살이도 꾀어 옥석이 구별 안 되던, 그 늪같이 구질구질하던 친분의 매트릭스가 나는 그립다. 사람 사이에서 몰래 멍청해지던 그 고래뱃속같은 풍경에 한번이라도 더 몸을 기대보고 싶다. 그렇게도 들어 비웃고 싶던 그곳에.                - 20071007, crying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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